고궁古宮 속 상징무늬 여행 ① 전통 문양으로 되짚어보는 우리 역사

한국의 조형문화를 말할 때 가장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고궁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고궁을 장식한 각종 조각상과 문양에는 벽사, 풍수, 기복 등 당대 선조들의 가치와 삶이 담겨있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에 대해 상세한 해석과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본지가 올해부터 전통문양 전문가이자 원로 미술사학자인 한-명품미술관 임영주 관장의 연재를 싣고자 한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2월호에서는 임 관장이 해당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과 향후 바라는 바에 대한 글을 준비했다.(편집자 주)


한국 조형미의 특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우현 고유섭을 위시하여 삼불 김원룡, 또 혜곡 최순우 선생은 수편의 무게있는 논고를 남긴 바 있다. 특히 김원룡 교수는 그의 <민족예술에서 본 한국의 미>라는 글 속에서 한국의 미는 ‘자연의 미’라고 단정하고 ‘이 맑은 하늘 밑 산수 속에 그 동심같은 한국의 백성이 살고 있으니 여기에 한국의 미의 세계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어떻게 사색을 요구하는 괴이怪異의 미가 나타나고 인공의 냄새를 피우는 추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였다. 또 ‘자연에 인공이 끼어서는 자연이 아니라는 것과 자연은 아름답고 추한 것을 초월한 미 이전의 세계이며 사람의 피에서 생겨나는 인공의 미가 여기에는 없으며 바로 한국의 미에는 이러한 미 이전의 미가 있다’고 했다.
흔히 우리의 옛 건축물을 대할 때면 무엇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나라 건축의 특성은 무엇인가, 또는 우리 고건축의 제반 양식과 문양요소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를 묻게 되면 쉽게 답변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호흡하며 살아왔다. 건축은 삶의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 말할 수 있다. 또 그 꾸밈은 삶의 옷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릇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또한 그릇의 의장意匠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옛 건축물은 그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 성행되어야하며 그 양식과 의장의 관계를 이해하여야 될 것이다.

문화와 역사가 깃든 문양, 해설 부족해 아쉬워

우리는 고대 이래로 많은 외래문화를 접하여 왔고 각 시대마다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의장요소들을 습합하여 받아들이거나 혹은 우리 환경과 풍토에 변용시키면서 꾸준히 변천 및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뚜렷한 변화와 고유의 지형과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독특한 건축문화를 이룩하여 왔다. 지세地勢를 존중하여 거스르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시키는 슬기를 터득했다. 일찍이 우리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 유교사상을 비롯하여 불교문화 풍수지리 등의 인문적 요인들은 건축의 입지에서부터 배치, 그리고 형태와 양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 특유의 조형적 특성들로 발전시킨 근간이 되었다.
어느 민족의 건축이든 그 지역의 지리적인 조건, 즉 자연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건축되는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음양오행설에 입각한 풍수지리설이 건축이 자리하는 장소, 방향, 규모 등에 강하게 작용하였다. 풍수지리설은 오랜 경험에 의해 얻어진 자연과의 조화를 기반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궁궐이란 고대 국가로부터 근세 군주국가에 이르기까지 국가 통치의 최고 주권자인 제왕, 또는 영주가 정무를 수행하던 청사와 그들이 거주하던 주택 및 그에 따른 부속 건물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조선시대 궁궐건축은 대표적인 것이 서울에 자리한 경복궁景福宮·창덕궁昌德宮·창경궁昌慶宮·덕수궁德壽宮·종묘宗廟 등이다.
고궁 앞에는 항상 관광객들로 발 디딜 수조차 없는 모습을 볼 때,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상과 우리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우쭐한 마음이 든 적이 있다. 그런데 몇 해 전에 나는 고궁 관리소장의 이야기를 듣고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외국인들은 물론 한국인들, 더욱이 우리 문화에 대해 대단히 유식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 고궁을 돌아보며 수많은 석조 조각물들과 건축조각 장식무늬에 대한 항상 궁금해 하는데, 이러한 상징무늬들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해설사나 올바른 해설 책자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궁에 가면 고궁의 건축 양식과 역사를 설명해 주는 문화재 해설사가 있지만 그들에게 물어보아도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어서 매우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제 궁궐의 영화나 울분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궁전의 입구 양편에서, 혹은 궁 안 어구御溝에 스며드는 잡귀를 막는 서수瑞獸, 혹은 용마루 끝자락 위에서 이 황혼에 눈비 맞으며 외로운 궁전들을 묵묵히 지키고 내려다보고 있는 취두鷲頭니 치미雉尾니 용두龍頭니 하는 물형들과 잡상雜像들은 궁궐의 화기火氣와 잡귀를 막아주는 상징동물이다. 그리고 월대 난간 끝 기둥머리에 십이 방위에 옹위한 서수 형상의 물형物形 조각들, 석계石階의 석수石獸, 답도踏道의 봉황 등 아백亞白의 화강석을 곱게 다듬어 만든 고궁의 상상의 갖가지 동물들은 지난날 이곳에서 일어났던 영화와 풍파를 모두 잊었는지 묵묵히 궁궐을 지키고 있다.

조형문화의 정점인 고궁, 그 의미 알면 감동이 두배

한국인이 낳은 조형문화 중에서 우리가 몸을 담고 살아온 한옥문화처럼 실감나게 한국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은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고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예 중 하나가 고궁 건축의 여러 상징조각물과 후원의 담장이 아닐까 한다. 경복궁 자경전을 보면 뒤뜰에 나지막한 간담이 있다. 그 담장 일부를 굴뚝으로 만들었다. 연가(煙家, 굴뚝)라고 한다. 얼핏 보면 그것은 담장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자세히 보면 담장과는 다르다.
지붕의 꼭대기에는 연가가 병렬되어 있다. 그 굴뚝에 흙으로 구워져 상감하여 박아 새긴 해·달·구름·물·소나무·바위 영지(불로초)·거북·학·사슴 등의 십장생무늬와 대나무, 연꽃, 국화 등 사군자 무늬, 혹은 민화民畵 등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의 본질적 순정미와 매력이 소리 없이 풍겨진다. 그 그림은 십장생 무늬가 중심이 되었으나 그것만이 아니고 딴 벽사상辟邪像도 지킴이로 새겨져있다. 이러한 유형의 장생무늬는 아미산峨嵋山의 굴뚝에서도 볼 수 있다.
보면 볼수록 석양의 시정詩情을 자아내는 이 동물 군상들과 서정적 장식 무늬들을 돌아보면서 외국관광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문화재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뜻한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애정이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다. 고궁을 찾는 방문객들은 물론 고궁에 관련된 책을 찾는 독자들도 늘어가고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가치 인식, 활용방안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문화적, 역사적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 고양 등으로 사회 통합을 이룰 수 있고 국가 경쟁력과 생산성 향상에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고궁 관리소장과 대화를 나눈 뒤 우리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관리하여 보여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달해 주는 해설사와 안내 책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안내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나의 우둔하고 게으름으로 차일피일하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연히 월간<민화>에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 기회에 그러한 고궁의 조형물들을 만든 이들의 안목을 되짚어 본다는 생각을 했기에 언뜻 그 상징 조각상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집필해 본다.

궁궐의 상징무늬 다룬 최초의 글, 재미있게 풀어갈 것

이 글이 단순히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애정을 넘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까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우리 선조들의 얼과 지혜가 담긴 전통문화의 뿌리와 역사를 좀 더 명확하게 국민과 관광객에게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 상징무늬는 각 시대와 역사와 문화를 대변한다고 하겠다. 무늬에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 철학이 강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궁을 갔을 때 그냥 건물의 모습과 아름다움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감추어진 무늬의 수수께끼를 풀어 가면서 고궁을 돌아보면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을 통하여 전하여 준 삶의 지혜와 안목을 깊이 터득함은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하여 시도된 무늬 디자인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현대인의 실생활에 활용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궁궐미술의 상징적 표현 가운데 길상적인 동·식물 형상을 통하여 그들이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며 추구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그것은 부귀·장수·자손번영 등 현세적 행복으로 귀결되는데, 이러한 상징 소재는 애초에 기호화된 문자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무늬들은 우리 옛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리 편찬한 것으로 우리나라 궁궐의 상징무늬를 다룬 최초의 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호부터 연재될 <고궁古宮 속 상징무늬 여행>은 다음과 같이 설정해 놓고 전개시키려 한다.
우리 가정에 외국인 손님이 왔을 때를 가정해서, 그 외국인 여행객에게 서울의 고궁을 안내하고자 할 때에 어떻게 하면 좀 더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인가에 중점을 두었다. 가령,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 유학을 간 찬영이가 방학 휴가를 맞아 귀국하면서 영국인 학생 제임스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한 주간은 서울 지역의 고궁과 박물관을 관람하고 그 다음 지방의 각 유적을 둘러볼 계획이다. 우선 찬영이네 가족은 제임스를 고궁으로 안내하기로 한다. 찬영이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찬영이 여동생 찬우 그리고 제임스의 다섯 명의 일행이다.
어느 눈이 하얗게 내린 겨울날 이들 일행이 경복궁을 관람한다. 우리는 택시를 잡았다. 옆에 서울의 상징인 해태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는 노란 택시이다. 겨울의 눈이 하얗게 내린 다음날 고궁을 찾았다. 눈 내린 고궁의 전각은 주변의 눈이 하얗게 덮힌 인왕산과 북악산이 병풍처럼 둘려 쳐져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찬영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와, 저기 그 해태다.”
우리 일행은 경복궁 광화문 앞 해태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해태에 대해 제임스에게 설명해 주었다. 본래 이 두 마리 해태상은 관악산冠岳山의 화기火氣를 억압시킨다는 생각에서 광화문 앞 육조六曹거리 좌우에 배치한 것이다. 궁실이 나라를 대표하던 시절에 궁실의 안녕은 나라의 태평이었다. 그 나라의 안녕과 태평을 지키는 벽사상辟邪像으로 해태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는 것이다.
마침 광화문과 근정문에서 벌어지는 옛조선시대 때의 수문장守門將 근무 교대식 재현 장면을 보게 된다. 울긋불긋 화려한 옛 군복을 착용한 군인들이 창검과 온갖 기치를 들고 사열하는 모습이 자못 엄숙하다. 정조正祖 임금 이후에 수문장은 29명인데, 제일 앞에 수문장守門將이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허리에 긴 검을 차고 위엄 있게 지휘하고 있는데 그 뒤에 군졸들이 정렬해 있다.
제임스는 무엇보다도 각종 기치에 그려진 상징 무늬가 흥미롭다. 찬영이는 제임스에게 옛 조선시대 궁궐문 수문장의 교대의식에 대해 설명하고 주작기朱雀旗를 비롯하여 백호기·유린대기·삼각기·현무기·백택기 등 깃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
광화문光化門 안으로 들어가면서 돌다리 영제교永濟橋의 난간 하엽동자 무늬와 상서로운 돌짐승을 본다.
또 근정전勤政殿 월대月臺의 문길〔門路〕돌계단의 상징무늬를 보고 난간의 사령四靈과 십이지신수十二支神獸 무늬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일행은 계속해서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둘러보고, 다시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를 관람하면서 마침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宗廟祭禮 광경을 관람하면서 그 의례에 사용되는 각종 국악기에 나타나는 무늬를 살펴본다.

고궁을 안내하는 일행을 만화와 삽화로 그려서 재미를 돋우는 한편, 이해가 빠르고 쉽게 한다. 그리고 일러스트한 연표年表와 보완 설명을 중간 중간 넣고, 주註를 달고, 뒤에 참고문헌을 곁들인다. 이렇게 하여 우리 옛 궁중의 무늬에 대해 소상히 배우면서 고궁의 멋과 아름다움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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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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