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와 토끼

도10 자라 등에 올라타고 수궁가는 토끼. 양산 통도사 명부전 벽화



올해는 계묘년癸卯年 토끼띠의 해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새해를 항상 낯선 사람 대하듯 조심하고 근신하는 마음으로 맞이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시간 속으로 무탈하게 진입, 동화되기 위해서는 경건하고 삼가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의 배후에는 우주 자연에 대한 외경심畏敬心과 물아 합일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고대 동양인들은, 인간은 우주 자연과 일체되어 그 변화와 나란히 할 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주 자연의 근본 원리를 알아야 했고, 이를 위해 위로는 천문을 관측하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터득한 것이 십간과 십이지이고 음양오행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다.
변화와 순환의 이치는 추상적이고 형이상적이다. 때문에 그것을 삶의 현장이나 사후 세계인 무덤에 현시적顯示的으로 적용키 어렵다. 그래서 쉽고 편리하게 실제에 적용할 수 있는 방도가 필요했고, 그런 필요에 의해 창안된 것이 바로 쥐·소·범·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속의 십이지 동물이다. 각 십이지에 대응하는 동물들을 중국에서는 십이 생초生肖, 또는 속상屬相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띠 동물’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자신의 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띠는 지금도 한국인의 의식 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전통 관념 중 하나다. 계묘년 토끼띠 해를 맞아 십이지 미술과 민간신앙, 설화, 민속 등 여러 문화 분야를 통해 다양한 성격과 형태로 등장하는 토끼의 상징체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도1 근정전 동쪽 계단 문로주 위의 자연형 토끼상. 서울 세종로 경복궁


십이지와 토끼

‘卯(묘)’의 상징 부호로서의 토끼
토끼는 십이지 즉,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卯’에 대응시킨 동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응시킨 것은 토끼가 ‘卯’의 의미와 통하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이 의문은 중국, 한국 이외의 다른 민족의 십이 생초를 살펴보면 쉽게 풀린다. 예컨대 일본과 베트남은 ‘卯’에 고양이를, 이집트와 그리스는 나귀를 대응시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자·원숭이·금시조·게·악어·홍학·소똥구리를 십이지 동물로 삼은 민족도 있다. 이것은 자연과 생존 환경에 따른 종種의 차이, 특정 동물에 대한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십이 생초로서의 토끼는 ‘卯’에 대응하는 상징 부호 이상의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2 뇌천대장괘(雷天大壯卦)

십이지는 음양오행의 변화 추이에 따른 생태계의 태동·성장·성숙·수장收藏 등의 변화를 나타낸다. ‘卯’는 우거진 모양을 형용하는 ‘茆(묘)’자의 ‘초두[艹]’가 생략된 글자로, 월별로는 음력 2월에 해당한다. 이달이 되면 양기가 강해지면서 새싹들이 돋아나 산야가 풀과 나무들로 우거지기 때문에 ‘茆’라고 한 것이다. ‘茆’, 즉 ‘卯’를 동물로써 대응시킨 것이 토끼이고, 상징 수법으로 도식화 한 것이 주역 64괘 중 하나인 뇌천대장괘(도2)다. 이괘는 아래로부터 양효陽爻가 연속적으로 세력을 키워 음을 몰아내는 형국을 나타내고 있다.
십이지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포괄한다. 예컨대 ‘자정’, ‘정오’라고 할 경우의 ‘子’와 ‘午’는 시간성을, 자좌오향子坐午向이라고 할 때의 ‘子’와 ‘午’는 공간성을 드러낸다. ‘卯’의 경우 시간상으로는 오전 5시~7시, 공간적으로는 정동正東에 대응한다.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宙라 하고, 천지사방과 위아래를 우宇라 한다[往古來今謂之宙 四方上下謂之宇]”라고 했다. 그러므로 무덤, 궁궐과 같은 곳에서 동쪽에 배치된 십이지 토끼상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우주 모형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좌) 도3 전 김유신묘 출토 납석제 갑주무장 토끼상,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도4 십이지신 번의 수수인신 도무 토끼상,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동쪽 방위신으로서의 토끼
우리나라 십이지 미술에 나타난 십이지상은 크게 자연형, 수수인신형獸首人身形, 수관인신형獸冠人身形으로 나뉜다. 자연형은 동물을 원래 모습 그대로 형상화한 것이고, 수수인신형은 동물 머리에 사람 몸을 가진 형태를, 수관인신형은 사람이 특정 동물을 새긴 모자를 쓴 형태로 된 것을 일컫는다. 수수인신형 중에는 갑옷 또는 도포 차림으로 무기를 든 무장상이 있는데, 이것은 십이지신이 방위신의 성격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갑주무장상의 복장은 경당頸當·견갑·흉갑·허리띠·요갑 등으로 구성된 갑옷과 박대(博帶, 신격을 가진 인물을 표현할 때 흔히 인용하는 장식 천)로 구성돼 있다. 이것은 불교에서 사방 정토를 수호하는 사천왕의 복장과 유사하며, 십이수十二獸를 공유하는 약사 십이신장의 복장과도 비슷하다. 도3은 통일신라시대 김유신묘 묘역의 동쪽 지점에서 출토된 토끼상이다. 도포 차림인 호석의 십이지상과 달리 갑옷을 입고 무장한 형식을 취한 것이 특징이다. 도4는 도복道服 차림의 토끼가 장검을 들고 날뛰는 춤을 추는 모습을 그린 번화(幡畵, 불·보살의 성덕을 나타내는 깃발 그림)의 일종이다. 이 번화는 불교 의례 때 행사장 동쪽에 배치된다. 토착의 방위 수호와 축귀逐鬼 신앙의 주술적 요소, 무속의 축귀 춤 형식이 십이지신의 방위적 성격과 결합한 예라 하겠다. 같은 형식의 도무跳舞 토끼상을 영양 현일동삼층석탑, 영양 화천동삼층석탑 등 불탑의 기단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도5 영양 현일동 삼층석탑의 수수인신 도무 토끼상, 통일신라


민속과 신화, 민담 속의 토끼

띠 동물로서의 토끼
전통적으로 십간십이지를 사용하는 한자 문화권에서는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해에 해당하는 띠를 갖게 된다. 올해가 계묘년이니 올해에 태어난 사람은 당연히 토끼띠가 된다. 앞서 말한 대로 십이생초의 하나로서의 토끼는 ‘卯’라는 추상 개념을 표징하는 시각 상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속에서는 토끼가 ‘卯’, 즉 ‘茆’에 대응하는 동물이라는 데에 근거하여 토끼를 생기 발동, 번성, 풍요의 의미를 가진 띠 동물로 해석한다.
한편으로는 토끼의 외형·성격·능력 등을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 평가하여 토끼띠는 매우 영리하고 모든 일에 민첩하며, 위험에서 빨리 벗어날 줄 아는 민첩한 감각과 지혜를 가졌다고 여긴다. 토끼띠 여자는 활달한 기지와 온정을 보여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케 해 준다고 하며, 토끼띠 남자는 상냥하고 품위 있는 태도와 지혜를 가지고 있어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올해처럼 토끼띠의 해에 타고난 사람은 순한 띠라고 하여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를 기뻐했다.


도6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 월상, 고려, 원주시 부론면



달의 정령精靈으로서의 토끼
사람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고 신화와 전설은 사람의 관념과 정신세계를 지배한다. 고대인들이 실제와는 무관하게 달에 토끼가 산다고 믿은 것은 신화와 전설의 힘이 크다. 대표적인 것으로 <항아분월姮娥奔月> 신화가 있다. 열 개의 태양 이야기인 <십일 신화>의 일부인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강 이러하다.
신궁 예羿가 천공에 한꺼번에 떠서 환란을 일으키는 열 개의 태양 중 아홉 개의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려 환란을 막았지만, 결과적으로 천제 제준帝俊의 아홉 아들을 죽인 셈이 돼버렸다. 화가 난 제준은 예를 그의 아내 항아와 함께 인간 세상으로 추방했다. 신선계에서 쫓겨난 예와 항아는 영생할 수 없는 운명에 빠진 것을 깨닫게 되자 불사약을 구하러 곤륜산 서왕모를 찾아간다. 서왕모가 불사약을 만들어 주면서, “길일吉日에 부부가 함께 먹어야 효험이 있다”라고 말했지만 항아는 욕심을 부려 남편 몰래 불사약을 혼자 먹어버렸다.
문헌에 따라서는 불사약을 먹은 항아가 몸이 가벼워지면서 둥둥 떠올라 달에 이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달로 도망쳤다고도 한다. 달에 도착한 후 항아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한 내용도 구구하다. 달의 궁전인 광한전에 들어가 숨을 때 갑자기 두꺼비로 변했다는 얘기가 있고《후한서》 〈천문〉, 선녀가 되어 잘 살았다는 얘기도 있으며《회남자》 〈남명훈〉, 계속 과부로 지냈다는 설화도 전한다.
한유의 《모영전毛穎傳》에는 이런 얘기가 기록돼 있다. 중산中山 사람 모영의 조상은 명시明眎라는 토끼였다. 명시의 팔대 손이 중산에 살다가 신선술을 터득하여 빛을 숨기고 물건을 부릴 줄 알게 되어, 항아를 데리고 두꺼비를 타고 달로 들어갔다고 한다.
월중토月中兎에 관한 얘기는 불교 석존의 본생담本生譚에서도 나온다. 바라문으로 변신한 제석천이 자신을 위해 소신燒身공양을 서슴지 않은 토끼의 마음을 갸륵히 여겨 만인들이 우러를 수 있도록 토끼를 달에 올려 두었다는 내용이다. 신화적 사유는 이처럼 환상적이고 자유분방하다.


(좌) 도7 박운(1493~1562) 묘비의 월상. 남양주시 와부읍
(우) 도8 토끼 두꺼비 무늬 수막새,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지혜, 재치 상징으로서의 토끼

지혜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흔히 민담이나 국문소설에 등장한다. 약자지만 강한 자에게 항상 지혜로써 승리하는 동물로 그려진다. 우리 민족 정서 속에서 토끼가 어떤 동물로 존재하고 있었는지는 의인 소설 <별주부전>이 잘 보여준다. 자라의 유혹에 넘어가 수궁으로 간 토끼는 간을 내놓으라는 말에 놀라서 간을 육지에 두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위기를 벗어난다. 수궁에서 겨우 살아 나온 토끼는 경망스럽게 행동하다가 독수리에게 잡혔으나 또다시 꾀를 내어 위기를 모면한다. 강자와 약자를 대립시켜 강한 자를 힘이 아닌 지혜와 재치로써 극복하는 예를 토끼를 빙자하여 보여주고 있다.
지혜와 재치의 토끼는 ‘토끼와 호랑이 민담’에서도 찾아진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여자를 잡아먹다 목에 비녀가 걸려 딱 죽게 생긴 호랑이를 만났다. 이를 본 남자는 측은하여 호랑이 목에 꽂힌 비녀를 빼 살려줬다. 얼마 후 호랑이는 살려준 사람을 배고프다는 이유로 잡아먹으려 했다.


도9 정미수(1456∼1512) 묘비의 월상. 남양주시 진건읍



남자는 자기가 살려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억울해 재판을 걸었다. 처음에는 소에게 재판을 청했다. 사람은 소를 실컷 부려 먹고 나중에는 잡아먹으니 호랑이도 사람을 잡아먹을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 뒤로 돼지나 개와 같은 가축에게 재판을 청했는데 계속 사람이 지게 되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토끼에게 재판을 구했다. 토끼는 호랑이가 자기도 잡아먹을 수 있으니 죽여야겠다고 생각해 꾀를 냈다. 토끼는 사람 말도 못 믿고 호랑이 말도 못 믿겠으니 재연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호랑이는 입을 딱 벌리고 비녀를 도로 목에 꽂아 넣었다. 다시 처음 상황이 된 호랑이는 사람을 잡아먹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포수에게 총알을 맞아 죽었다. 토끼의 영악스러움과 재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민담이다.
십간십이지는 양택이나 음택 주변에서 방위와 시간을 포괄하는 우주 모형으로 존재하기도 했으며, 방위신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하늘에 대응하는 땅의 십이지는 음양오행과의 관련 속에서 역법曆法과 풍수론에 적용되었고, 특히 각 십이지에 대응하는 띠 동물은 추상적이고 형이상적인 우주 자연의 변화와 순환의 이치를 현실에 적용하는 훌륭한 수단과 방편이 되었다. 계묘년 새해에 마주하는 띠 동물 토끼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이 토끼가 그냥 단순한 토끼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균 |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미술사학과(문학석사)를 졸업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우리문화연구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한국민화학회 고문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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