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자경궁 십장생 굴뚝 – 동화의 세계와 같은 장수의 유토피아

경복궁 자경궁 십장생 굴뚝
동화의 세계와 같은 장수의 유토피아

경복궁 자경전은 대비가 거처했던 침전이다. 그 뒷마당 벽처럼 길게 만들어진 굴뚝에 십장생 이미지가 흙으로 빚은 도판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림 같은 조각이고, 민화풍의 이미지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궁중의 십장생도 병풍과 전혀 다른 양식의 이미지다. 깊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은 평면의 공간에 여러 소재들이 유기적인 관계 없이 나열식으로 배치되었다. 이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영락없는 민화다.


민화식 이미지는 이미 자수나 도자기와 같은 공예품에 많이 활용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미지가 대비의 침전에 그것도 작은 공예품이 아니라 큰 벽면에 등장한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만일 중국의 궁전이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굴뚝을 중건한 1888년 민화의 열풍이 궁중 깊숙한 곳까지 미친 것이다.
구름을 구름대로, 불로초는 불로초대로, 사슴은 사슴대로, 학은 학대로 나름 매력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엮어진 것이 아니라 각기 닫힌 영역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건 마치 어린이의 그림 같다. 공간 관계를 무시하고 물상간의 위계질서가 그렇게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았다. ‘따로 또 같이’라 할까, 평면적이고 나열식의 배열로 동화의 세계와 같은 장수의 유토피아를 표현했다.


궁중과 사찰로 확산된 민화표현

자수에서는 민화풍의 이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 <자수십장생 병풍>(도 2)이 대표적인 예다. 강렬한 붉은 색 바탕 위에 십장생의 유토피아가 단정하면서 활기차게 표현되었다. 8폭의 병풍인데, 폭마다 십장생을 갖췄다. 위로부터 구름·해·학·산·거북·물·소나무·대나무·사슴·불로초 등 10개의 장수 상징으로 구성되었다. 다만 열개의 장생을 균등하게 배치된 것이 아니라 주객의 위계를 뒀다. 소나무와 그 밑에서 노니는 사슴은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다른 장생은 배경으로 삼았다.
이 자수병풍은 두 폭이 하나로 어울릴 때, 아름다운 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한 폭의 윗부분에 학이 중심이면, 맞은 폭엔 산봉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쪽에 물과 거북을 아래에 배치하면, 맞은 폭엔 그것들을 위에 둔다. 한쪽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황색이면, 맞은 폭엔 녹색이다.
이 자수병풍은 그래픽처럼 표현되어 있어 사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표하지 않았다. 화면은 활력으로 가득 차있다. 자유자재로 구부러진 소나무가 화면을 지배한 가운데 산과 구름을 비롯한 다른 십장생들이 점점이 떠있듯이 표현되어 있다. 평면적인 배치에 대나무 아래의 바위는 사각형의 조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소나무 잎은 방사선 모양의 일정한 모양이 반복되고 있으며, 흐르는 물도 일정한 간격으로 패턴화되어 있다. 단순화되고 도식화된 표현에서 민화적인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이 자수병풍은 고급 재료에 견고하고 단단하게 수를 놓은 솜씨로 보아 궁중 자수가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왼쪽 폭 오른쪽 위 바위에 ‘卍’자가 새겨져 있는 점으로 보아 사찰이나 적어도 불교와 관련되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찰에 웬 십장생도인가? 사찰에 웬 민화풍일까? 길상문양은 이미 17세기부터 불단이나 공예품이 나타나다가 19세기 후반에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민화를 적극 받아들였다. 벽화나 불화에 민화 이미지가 나타나고, 심지어 통도사 명부전처럼 안팎으로 민화로 장식된 전각이 등장하기도 한다. 불화와 민화의 멋진 랑데뷰다.


현실적인 소망의 아름다운 은유

장수를 상징하는 열 개의 자연으로 구성한 십장생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그림이다. 중국에도 장생도가 있지만, 굳이 열 개로 한정하지 않는다. 그냥 장생도일 뿐이다. 한국적인 도상이라 할 수 있는 십장생도의 시작은 고려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리거울에 십장생의 이미지가 등장하고, 십장생 병풍에 대한 이색의 글이 전한다. 고려 후기의 유명한 학자인 이색은 세화 십장생도에 관한 글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시작 부분을 인용한다.

“십장생은 곧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이다. 우리 집에는 세화 십장생이 있는데, 지금이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

세화란 정월 초하루에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로 선물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통해 그는 아픈 몸을 낫고자 한 것이다. 십장생 하나하나를 쓴 글에서 그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해’라는 제목의 시다.

푸르고 푸른 하늘은 밤낮으로 회전하고 圓象蒼蒼晝夜旋
산하 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와 같은데 山河大地海中船
해 바퀴는 만고에 멈추는 곳이 없건만 日輪萬古無停處
달이 혹 앞서고 뒤서는 게 가소롭구나 可笑姮娥或後先

해와 달이 멈추지 않고 앞서고 뒤선다고 했으니, 이는 천동설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인 산하의 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처럼 멈춰 서있고 하늘과 해와 달이 움직인다고 본 것이다.
세화 십장생도는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세시풍속으로 이어졌고, 궁중잔치인 가례嘉禮때 십장생도 병풍이 설치되면서 그 쓰임이 확대되었다. 궁중에서 제작된 십장생도 병풍은 8내지 10폭 규모에 고급 재료를 사용하여 궁중장식화의 화려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다시 조선후기에는 궁중회화 십장생도가 민간에 확산되면서 민화로 제작되는데, 민화에서는 대형의 병풍으로 그려지기 보다는 한 폭에 십장생 모두를 담거나 아니면 화조화 병풍 중에 십장생도가 한 폭으로 구성되었다.

민화에서 십장생도의 열풍은 뜨거웠다. 1900년 초 어느 서양화가가 양반 댁을 그린 <가정집>(도 3)에 십장생도가 등장한다. 대청마루 위에 서양식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 헤어스타일을 보아서는 일제강점기 이전으로 올라갈 수 없는 모습이다. 집주인이 소반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동안, 부인은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안방에 있는 아이와 놀고 있다. 안방의 화조도 병풍, 두껍닫이 문에 붙인 부채 그림들, 그리고 상인방 위에 십장생도가 붙어있다. 가로로 길고 세로가 좁은 화폭의 십장생도다.
화조도 병풍에서도 한 폭 정도는 십장생을 배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화조도> 중 십장생(도 4)이 그러한 예다. 이 그림은 소나무·사슴·구름·불로초·바위로 이뤄졌으니, 10장생이 아니라 5장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은 십장생을 대표하는 데 손색이 없다. 이 그림의 주인공도 소나무 밑에서 노는 사슴이다. 소나무 가지는 팔랑개비 모양으로 춤을 추고 있고, 그 밑은 사슴 두 마리는 평화롭게 불로초를 뜯는 데 여념이 없다. 구름은 소나무 가지를 가로 질러 길게 깔려 있고, 땅에는 흙인 듯 바위인 듯 조그만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평화롭고 흥겨운 장생의 낙원이다.
장수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다. 진시황이 중국 천하를 최초로 통일시키는 기염을 토했어도 장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불로초를 찾아서 서복西福(서불로도 불림)과 어린 남녀 3천 명을 삼신산이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일본으로 보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4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우리의 조상들은 장수를 상징하는 자연으로 구성된 십장생이란 유토피아를 그림 속에 펼쳐놓고 장수의 꿈을 꿨다. 십장생의 유토피아는 현실적인 소망의 아름다운 은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떠한가? 건강에 좋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나치게 불로초와 같은 약, 음식 등에 집착하고 있다. 이는 진시황의 조급함에 다름없다. 만일 진시황이 느긋하게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는 지혜를 가졌다면, 좀 더 오래 살았을는지 모른다. 우리도 진시황처럼 불로초에 집착하기보다는 우리의 조상처럼 십장생도 병풍을 치고 여유롭게 그 자연을 노니는 것이 더 현명할지 모른다. 운명은 재천이기 때문이다.

글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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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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