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미술관 소장 <10폭 백납병풍> 최초 공개

PART 01. <10폭 백납병풍> 사전 공개 행사 스케치

겸재정선미술관이 지난 11월 28일 최근 소장하게 된 <10폭 백납병풍>을 공개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부터 명대 절파계 대가의 작품까지 희귀한 작품 42점이 장황된 <10폭 백납병풍>의 역사, 문화적 가치와 뒷이야기를 살펴본다.


긴 잠에서 깨어난 병풍 한 틀이 학계의 이슈로 떠올랐다. 겸재정선미술관(관장 김용권)이 최근 소장하게 된 <10폭 백납병풍>이 그것으로, 겸재정선미술관은 지난 11월 28일 한시적으로 한국회화사 전문가 및 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사전 공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백납百衲’이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병풍에서는 다양한 화제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겸재 정선의 작품 7점을 포함해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1686-1761), 남리 김두량(南里 金斗樑, 1696-1763) 등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그림 뿐 아니라 중국 명시대 절파계 대가인 소선 오위(小仙 吳偉, 1459-1508)의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작품 및 작자 미상의 그림까지 총 42점의 작품이 장황됐다. 애초 일본인이 해당 병풍을 소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 기업가를 거쳐 현재 김병희 강서문화원 명예원장이 소장하게 되면서 이를 겸재정선미술관에 위탁했다. 겸재정선미술관은 백납병풍은 영인본으로, 병풍 속 작품은 각 작품마다 액자 및 화첩으로 다시 표구해 공개했으며 주요 작품들은 확대영인본을 따로 만들어 원본과 나란히 걸어둠으로써 유물을 더욱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최초 소장가는 일본인, 장황시기는 일제강점기로 추정

이날 병풍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발표한 김용권 관장의 말에 따르면, 병풍 해체 과정에서 장황된 시기 및 관련 단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우선 앞면과 뒷면에서 삼베, 갱지를 사용해 마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백납병풍으로 장황된 시기는 최대 100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주역 내용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글씨가 적힌 한지 종이가 배첩됐으며 1962년 9월에 일본 동경부 상야공원 도미술관에서 열린 서양화 전시를 소개하는 내용의 양지, 일본 동경에 소재한 다니구찌 마사하루가 창설한 신흥 종교 단체의 엽서가 나왔다.
이를 종합해 볼 때 <10폭 백납병풍>의 최초 수장가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 무렵 병풍이 장황돼 1962년 이후 다시 보수, 수리됐음을 알 수 있다.

미술사적으로 큰 의미 지녀

병풍 속 작품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작품은 정선의 <사문탈사도寺門脫蓑圖>이다. 그간 간송미술관 소장본 <사문탈사도> 2점을 바탕으로 사문탈사도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으나 구도적 한계로 등장인물, 사찰의 장소, 작품의도 등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겸재 정선의 또 다른 <사문탈사도>가 발견되기를 절실히 기다려오던 찰나에 이렇게 <사문탈사도>가 새로이 발견됨으로써 연구에 미진했던 부분을 보다 분명히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김용권 관장은 “조선후기 대표 작가들과 중국 명나라 절파계의 거목인 소선 오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을 비롯해 작자 미상의 조형성이 뛰어난 작품까지 장황된 <10폭 백납병풍>이 지금까지 온전히 전해 내려온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병풍에 대한 자세한 연구결과는 향후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겸재정선미술관

PART 02. 미니인터뷰

Q <10폭 백납병풍> 사전 공개 행사를 개최한 배경은 무엇입니까?

겸재정선미술관이 <10폭 백납병풍>을 소장하게 된 시기는 지난해 10월경으로 이번에 최초로 대중에게 해당 유물을 공개하게 됐습니다. 미술관으로서 미술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을 많은 분들께 공개할 의무가 있고,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보자는 뜻이지요.
또 다른 이유로는 학문적 연구를 위해서입니다. 사실 5~6개월 전부터 홍익대학교 한정희 교수, 덕성여자대학교 박은순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진영 부장, 원광대학교 유미나 교수 등 연구진들이 병풍 속 작품의 도판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판만을 보고 연구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유물 원본을 공개할 것을 약속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10폭 백납병풍>의 미술사적 가치는 매우 높습니다. 일례로 병풍에서 발견된 겸재 작품의 7점 가운데 <사문탈사도>를 들 수 있겠네요. 기존의 사문탈사도는 사찰 문 앞만 묘사돼 연구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에 발견된 작품에서는 사찰 전체가 온전히 드러나 결과적으로 해인사라는 것을 밝힐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명대 대표 절파 화가인 소선 오위의 작품이 10점 발견됐다는 점도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유물의 장황 방식이 특이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병풍의 최초 소장자는 일본인이었던 것 같고 자신의 취향대로 병풍 안에 다양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병풍을 꾸몄는데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쁘진 않아요. 다만, 작품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림들을 그렇게 장황하진 않았을 거에요. 겸재정선미술관은 유물을 입수한 뒤 각 작품들을 다 떼어내 별개로 액자화하고, 병풍은 영인본으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발견된 유물이 온전히 그대로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 작품은 분리됐을 때 그 가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이렇듯 조선 후기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최초 소장가의 아마추어적인 장황방식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Q 추후에 관련 학술대회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겸재정선미술관은 매년 5월 겸재문화예술제를 개최해 세미나와 기획전을 엽니다. 올해 개최하는 제6회 겸재문화예술제에서는 <10폭 백납병풍>을 주제로 학술대회와 42점의 작품을 공개하는 기획전을 열 예정입니다. 아직 날짜가 확정된 것은 아니나 보통 5월 둘째주 금요일 정도에 축제를 열지요. 학술세미나에는 고연희 성균관 대학교 교수의 사회로 안휘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박은순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장, 한정희 홍익대학교 교수, 유미나 원광대학교 교수 등의 연구진이 논문 발표 및 총평을 할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고, 참여해주신다면 감사드리겠습니다.

Q 독자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10폭 백납병풍>은 오랜 시간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것인데 이번 기회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각 작품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뛰어나 학자로서 흥분을 감출 수 없는데요, 향후 전시를 보게 될 관람객들께서도 선조들의 삶과 혼이 실린 작품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이를 발판삼아 발전하시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PART 03. <10폭 백납병풍> 속 주요 작품 BEST 6

병풍 속 작품 가운데 특히 눈여겨봐야할 작품 6가지를 추려보았다. 각 작품과 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한다.

01. 겸재 정선, <사문탈사도寺門脫蓑圖>

사문탈사寺門脫蓑란 ‘절문에서 도롱이를 벗다’라는 뜻이다. ‘도롱이’는 물기가 잘 스며들지 않는 띠풀을 엮어 어깨에 둘러쓰던 비옷으로, 조선시대에는 눈이나 비가 올 때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두르고 나다녔다.
이 작품은 앞서 발견된 간송미술관 소장본의 정선의 <사문탈사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몇 가지 조형적, 미술사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있어서 주목된다. 무엇보다도 간송미술관 소장본의 정선의 <사문탈사도>는 사찰 문앞을 배경으로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번에 발견된 <사문탈사도>는 부감법으로 사찰 전체와 그 주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은 것이 크게 다르며, 나아가 화면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들의 포즈나 포지션도 사뭇 달라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과연 이번에 발견된 정선의 <사문탈사도>에 등장하고 있는 인물은 누구이며 어느 사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정선은 <사문탈사도>를 여러 점 남겼다. 이에 대해서는 간송미술관소장의 <사문탈사도>에 장첩된 정선과 이병연의 편지 내용에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영조 17년(1741) 겨울에 양천 현령으로 있는 정선에게 보낸 사천 이병연의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간밤에 눈이 많이 왔는데 문안을 못 드리는 죄송한 마음이 있으니, 정선 자네가 바쁘겠지만 <사문탈사도>를 좀 빨리 그려주길 바라네.

궁하고 병든 몸이라 문안 못 드립니다. 다시 화제畵題를 써서 보내드리는데, ‘사문탈사’는 형이 익숙한 바입니다. 소를 타고 가신 율곡 고사故事의 본시本試에, 한 해 저물고 눈이 산을 덮는데, 들길은 큰 나무 숲 속으로 나뉘어 간다. 또 사립문 찾아가 늦게 두드리고 읍하여 뵈니…갖춰 쓰지 못하고 보내드리니 살펴보십시오.

위의 편지 내용에서 보면,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이병연은 정선에게 자연스럽게 <사문탈사도>를 그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로써 정선이 <사문탈사도> 분본粉本을 사용하여 적지 않게 반복적으로 그려냈음을 알게 된다. 이를 뒷받침해주듯 다음과 같은 몇몇 자료가 전하고 있다. 1755년 8월에 완성된 을해본乙亥本인 <사문탈사도>에는 채색을 제외한 먹선 만으로 그려져 전하고 있는데, 나무나 지붕의 선, 인물 옷 등이 앞선 <사문탈사도>(간송미술관소장) 채색본과 거의 유사하다. 그리고 을해본인 <사문탈사도> 분본이 매우 거친 속필로 구사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정선이 쇄도하는 대량의 수응화를 신속하게 제작, 완성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02. 관아재 조영석, <송하고사도松下高士圖>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1686-1761)은 높은 관직을 지내진 못했지만 시, 서, 화 삼절로 선비의 청빈한 삶과 풍류를 즐긴 작가로 산수인물화에 능했는데 특히 자신의 삶을 반영한 <설중방우雪中訪友>나 <유음납량柳陰納凉>과 같은 작품이 당대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발견된 조영석의 <송하고사도>는 치밀한 구도와 조화롭고 안정감 있는 필치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자칫 단조롭게 보여질 수 있는 분위기를 뛰어난 필력으로 살려냈고. 속도감 있는 유려한 필치의 인물 묘사가 신비감을 드러내고 있다.
소나무는 세한삼우歲寒三友나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문인이나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며 소나무 아래에 배치되는 인물은 신선이나 고승, 은일자나 선비 등으로 중국 남북조시대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대표되는 은일, 혹은 사상가들이 나무 아래에서 성도成道를 이룬 것처럼 이들 역시 청빈하게 살며 수행하는 것을 희망했다.


03. 죽리 박동보, <신선도神仙圖>

이번에 발견된 죽리 박동보(竹里 朴東普, 1665-1729이후?)의 <신선도>는 안정감 있는 공간 구성력, 용필과 용묵법의 능숙한 사용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박동보의 <신선도>에서는 비록 소품임에도 웅장하게 느껴지는 화면구성과 거침없는 필력 등에서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 안휘준 교수는 작가가 조선 중기 화풍을 계승하고 있어서, 작품의 학술적 가치가 높으며 특히 18세기 절파 계통 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화폭에는 산세가 높고 깊게 느껴지며 화면 중심부에 등장시킨 인물이 산세에 취한 듯 자유롭다. 즉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이 편안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누워 책을 읽고 있고 있으며, 이제 방금 동자가 차 주전자를 비롯한 차세트를 등에 지고 다리를 건너오고 있다. 우측 상단으로부터 ‘칠십사세노인필중리七十四歲老人筆竹里’라고 적혀 있어서, 죽리 박동보가 74세에 그린 <신선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04. 남리 김두량, <운룡도雲龍圖>

이번에 발견된 남리 김두량(南里 金斗樑, 1696-1763)의 <운룡도>는 흔치 않은 작품으로, 대담한 발묵법潑墨法으로 처리한 칠흑같이 어두운 운무를 배경으로 여의주를 거머쥐기 위해 조화를 부리는 용의 모습에서 그의 기량이 엿보인다. 이와 같은 <운룡도>는 대체로 용이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게 하는 조화를 부린다하여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화폭을 보면 윤곽을 필선보다 먹의 외운外暈으로 나타냈는데 짙은 농묵으로 처리된 구름과 거침없이 그려낸 용의 모습이 하나 되어 세찬 기세가 느껴진다. 농묵으로 과감하게 처리한 운무에 비해 용의 눈, 코, 입, 몸의 비늘과 발톱 등은 비교적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이 매우 돋보인다. 지금까지 발견된 그의 작품 가운데 이처럼 실감나는 예는 매우 드물다. 다만 이번 작품과 같이 수묵 위주로 처리된 형상은 남송대 선종화의 영향을 감지하게 하는데,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실려 있는 송대 진용陣容의 <구룡도>에서 이러한 유형을 찾아 볼 수 있겠다.


05. 현재 심사정, <금니화조도金泥花鳥圖>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은 산수를 잘 그려 정선과 함께 겸현양재謙玄兩齋로 손꼽혔으며, 꽃과 새 그림 역시 아주 잘 그렸다.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강세황은 심사정을 일컬어 ‘가장 잘하는 것이 화훼와 초충, 영모翎毛(새와 짐승 등을 소재로 그린 그림)였으며 그 다음이 산수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발견된 현재 심사정의 <금니화조도>는 아교에 갠 금니金泥로 그린 새 그림이다. 새가 나무에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순간을 능숙하고 대범한 붓 자국으로 절묘하게 그려냈다. 좌측 중앙으로는 현재라는 관서와 선명하지는 않지만 인장이 찍혀 있다. 알다시피 새 그림은 보통 짝을 이루어 그리는데, 심사정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외롭게 보이는 새를 등장시켜 묘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심사정의 <금니화조도>는 온갖 풍상을 겪은 뒤 초월의 경지에 다다른 심사정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06. 소선 오위(중국 명나라 작가), <산수도山水圖>

이번에 발견된 <산수도> 7점과 <화조도> 3점은 명대 절파浙派의 절정기를 이끈 화가 소선小仙 오위(吳偉, 1459∼1508)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소선小仙(작은 신선) 오위吳偉가 누구인가? 그는 16세기 명나라 화단을 석권했으며 일세를 풍미했다. 그는 대진戴進의 화법을 이어받은 절파계의 대표적인 화가로, 이번에 발견된 절파풍의 산수화 7점은 모두 그의 화풍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화면 구성에 있어서는 대부분 마하파의 영향을 받은 듯 좌나 우로 치우친 일각구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으로 짐작되는 화조화 역시 원체화풍을 닮아 있어 흥미롭게 받아들여진다.
그의 산수화 7점을 살펴보면 주요인물과 나뭇가지 그리고 산과 바위는 절파계의 특징인 춤추는 난시준亂柴皴의 선 즉, 즉흥적이면서도 자유로우면서도 현란한 선으로 경물을 표현하고 있다. 주요 제재인 산과 바위는 거칠게 표현되어 적막하게 보이며, 나뭇가지들은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어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것처럼 보인다. 소선 오위는 이와 같은 화폭의 경물을 수묵의 농담으로 자유롭게 처리하였으며 때로는 붓을 눕혀 두텁게 긋는 부벽준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의 산수화는 어떤 격식이 있는 묘사 방식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붓의 춤일 뿐이며, 규정할 수 없는 자유롭고 빠르고 어지럽게 휘날리는 기운생동의 화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로써 보면 오위는 많은 부분에서 대진을 계승했지만, 그의 붓은 대진보다 훨씬 자유롭고 빠르고 방일하다.
많은 화가들이 오위의 화풍을 추종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발전시켜나갔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장로, 장숭, 종례, 정문림 등이었다. 이들은 절파 말기를 이루는데 훗날 광태사학파狂態邪學派라는 다분히 부정적이며 조롱조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그들은 오위의 후계자들이다.
한편 깊게 생각하고 연구되어야 할 것은 오위 작품인 것은 확실하게 여겨지지만 그의 7작품에 쓰인 관서나 인장이 달라 의심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영복 KBS 진품명품 감정위원은 ‘오위는 호가 소선少仙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암, 오세은, 광명, 사선 등으로 쓰기도 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어떤 작품에는 인장이 크게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수장가의 인장으로 보여 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글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사진 겸재정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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