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정선미술관 개관10주년 기념 故 황창배 특별기획전
– 온몸으로 관습의 틀 타파한 자유주의자

겸재정선미술관(관장 김용권)이 지난 7월 25일부터 9월 3일까지 개관 10주년을 맞이해 특별기획전 <황창배의 일탈, 한국화의 이정표>를 개최했다. 일평생 파격적인 방식으로 실험을 거듭해온 그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뒤돌아보고 미술사적 의의를 간략히 살펴본다.


한지 위 묵직이 번져가는 먹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산수가 넘실대고, 세상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먹과 채색을 뒤섞은 파격적인 표현 방식으로 ‘한국화의 테러리스트’, ‘무법無法의 자유주의자’ 등으로 불리었던 故 황창배 작가의 특별기획전시가 겸재정선미술관에서 개최됐다.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겸재정선미술관이 주최한 이번 전시는 한국화를 해체하여 경계를 허물고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으로 화단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황창배 작가의 삶과 예술을 재정립하고자 마련됐다. 전시 개최 배경에 대해 김용권 겸재정선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창조적 독창성이나 자존감 없이 이뤄내기 어려운 작가의 삶과 예술을 함께 소통,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한 바 있다.

경계, 그 너머의 세계를 그리다

전시는 크게 1부 <일탈 미학>과 2부 <북한 기행>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민화 화조화를 연상케하는 자유로운 필치의 그림부터 수묵화와 채색화, 평면과 입체 등이 혼재된 작가의 대표작들이 전시됐다. 1부 전시장 입구에 내걸린 <무제> 작품 역시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곡고댁哭高宅’, 풀이하자면 ‘부잣집을 곡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냉소로 빼뚤게 쓴 선분홍색 글자와 장닭으로 희화화된 인간, 휘갈긴 듯 써내려간 글자들 사이에서 그의 무법無法적 면모를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전시장에는 1980년대의 작품이 주를 이루는데 일체의 인위적인 정제整齊를 거부하고 자신의 감정을 여과없이 쏟아내려는 듯 당시 전형적인 한국화, 산수화의 틀을 내던진 그의 그림들이 미스테리하면서도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 재료며 도상이 뒤엉켜 한 눈에 알아보기 힘든 작품부터 한 명의 인물만을 간단히 묘사한 작품까지 손이 가는대로, 먹이 번지는 대로 얼룩이며 선을 남긴 그의 대범한 시도에서 특유의 자신감과 선구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내 그림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겠다는 생각은 별도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왜냐면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름대로 울타리가 있어서 그것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계획의 그림은 그림의 ê·¸ 한계를 어느정도 깨뜨려주는 즐거움이 있다.” – 작가노트 중

2부에서는 22년 전 황창배 작가가 바라본 북한 풍경이 펼쳐졌다. 1997년 최초로 남북한의 공식 승인을 받고 ‘북한문화유산조사단’의 일원으로서 북한에 다녀온 그는 당시 그려낸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품을 완성, 이를 바탕으로 1998년 선화랑에서 초대 개인전을 개최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시 대표작으로는 당시 경험한 북에 대한 기억의 편린들을 오리고 붙여 콜라주처럼 재편집해 완성한 <북한 환타지아>, 장엄한 역사가 서린 현장을 미니멀한 구도와 현대적인 색감으로 재구성한 <안악3호 고분> 및 <련광정> 등이 있다. 그의 시각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평온하면서도 활기가 넘치고, 작품 속 공간을 에워싼 공기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관람객들에게 가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와 동떨어지기는커녕 놀랍도록 닮은 풍경이 묘한 동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따스한 시선으로 그림 밖 풍광을 아름답게 묶기도 하고, 번뜩이는 기지와 담대한 실험으로 한국화의 통념을 해체한 황창배 작가. 그의 아름다운 일탈은 후대 작가들에게 뜻깊은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


글·사진 문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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