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낌 없이 자유분방했던 풍류의 서예가 – 王徽之 왕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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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낌 없이 자유분방했던 풍류의 서예가
王徽之 왕휘지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한밤중, 문득 잠이 깨어 바깥을 내다본 적이 있는가. 누구라도 감상에 젖어 노래를 부르며 문득 그리운 이를 떠올릴 것이다. 동진東晉 시대의 왕휘지王徽之(?-388)가 했던 경험이 바로 이것이었는데, 그는 풍류를 즐긴 예술인답게 눈 덮인 길을 뚫고 배를 띄워 그리운 친구를 몸소 찾아 나섰다. 한밤중에 왕휘지가 친구 대규를 찾아 섬계에 있는 그의 집 앞까지 갔다가 만나지도 않고 되돌아온 이야기는 엉뚱하기도 하고 한편 낭만적이기도 하여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왕휘지가 대규를 찾아간 이야기를 그린 그림 또한 널리 감상되었는데, ‘대규를 찾아가다’는 뜻으로 <방대도訪戴圖>, 혹은 ‘섬계에서 배를 돌리다’는 뜻으로 <섬계회도剡溪廻棹> 등으로 제목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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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계에서 배를 돌리다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이 있다. 후한시대부터 동진시대까지 실존했던 인물들의 독특한 언행이나 일화를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왕휘지의 이야기가 여럿 있지만 가장 유명한 일화는 한밤중에 대규를 찾아 나선 일일 것이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왕자유王子猷(왕휘지의 자)가 산음현에 살고 있을 때, 밤에 큰 눈이 내렸다. 잠에서 깨어나 방문을 열고 술을 가져오라 했는데 사방이 온통 은빛이었다. 그래서 일어나 배회하면서 좌사左思(250?-305)의 「초은시招隱詩(은자를 부르는 시)」를 읊조렸다. 이 때 왕자유가 읊었던 시는 이랬다. “지팡이 짚고 은사隱士를 찾아 나서니, 황량한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로질러 있네. 바위 동굴엔 번듯한 집도 없는데, 언덕에선 거문고 소리 울리네. 흰 눈은 그늘진 산등성이에 쌓여 있고, 붉은 꽃은 햇볕 드는 숲에서 빛나네.” 시를 읊던 왕자유는 갑자기 대안도戴安道(대규戴逵) 생각이 났다. 당시 대안도는 섬현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곧장 그 밤으로 작은 배를 타고 그를 찾아 나섰다. 하룻밤이 지나서 비로소 도착했는데, 대문까지 갔다가 들어가지 않은 채 돌아갔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왕자유가 말하기를: “본래 흥이 올라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간 것이니, 어찌 반드시 대안도를 만나야만 하리오!”라고 했다.(김장환 역주, 『세설신어』, 살림, 2000, p.232)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흥취를 추구하다

흔히들 왕휘지가 눈 내린 겨울 밤 감상에 젖어 대규를 그리워하여 길을 떠났다고 여기지만, 『세설신어』의 위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면 왕휘지는 그 날 밤 좌사의 ‘초은,’ 즉 ‘은자를 찾아 나서는’ 흥취를 추구한 것이지 벗을 만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규는 당시 칠현금七絃琴의 명수였고 글과 서화로도 이름났던 은자였다. 좌사의 시에 등장하는 ‘은사’와 ‘거문고 소리’가 왕휘지로 하여금 대규를 떠올리게 하였던 것이다. 흥취를 좇아 먼 길을 가서 대규를 만나지도 않고 돌아온 엉뚱한 행위, 이는 왕휘지의 거리낌 없이 방종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분방했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왕휘지가 살았던 동진시대는 노장사상을 신봉한 ‘청담’의 시대로 도피적 처세술이나 기교奇
矯한 행동이 코드였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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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書聖 왕희지의 아들

중국 서법사에서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꼽히는 왕희지王羲之, 그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다섯째 아들이 왕휘지였다. 부친을 계승하여 초서와 행서를 잘 썼던 서예가였다. 진대晉代의 최고가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관직은 황문시랑黃門侍郞에 이르렀다. 왕휘지에 관한 또 다른 일화로 한 번은 그가 남의 빈 집에 잠시 기거한 적이 있었는데, 곧장 대나무를 심게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잠시 머물면서 어찌하여 이렇게 번거롭게 하시오?”라고 하자, 왕자유는 한참 동안 휘파람을 불더니 대나무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어찌 하루라도 이 분이 없을 수 있겠소?” 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이분此君’이 대나무의 별칭이 되었음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방대도, 눈 내린 겨울밤의 흥취

<섬계회도도>(도 1)는 눈이 내려 천지가 온통 흰 빛인데 왕휘지가 대규의 집까지 왔다가 배를 돌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 후기의 도화서 화원 양기성이 그린 이 그림은 가장 전형적이고 직설적인 ‘방대도’의 도상이라 여겨진다. 그러다보니 그림이 다소 무미건조하다. 무명 화가의 작품인 민화 <설야소주도>(도 2)는 같은 모티프로 이루어졌지만 수평 구도로 배열된 왕휘지의 배, 강기슭, 대규의 집, 그리고 원산이 상하로 긴 화폭에 어우러져, 어눌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맛깔스러운 운치를 살려낸 듯하다.
조선후기의 문인서화가인 신위申緯(1769-1845)가 그린 <방대도>(도 3)는 나무가 우거진 강기슭에 집과 거룻배가 반쯤 가린 모습으로 소재와 주제를 드러내지 않은 은근함이 있다. 화면 상단의 하늘 빈 곳에 제시를 적어 넣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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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위는 황공망과 미불을 운운하며 남종문인화의 사의寫意를 표방하였지만, 뒤이은 제발에서 밝혔듯이 이 그림은 “첫 눈 내린 날 술 마신 후” 마음에서 일어난 겨울밤의 흥취를 그린 것이다. “첫 눈 내린 겨울밤의 흥취”가 왕휘지 고사의 핵심이 아닌가.
이러한 흥취를 담은 민화로 ‘섬계로 배를 저어가다’는 <섬계이도>(도 4)와 ‘눈을 타고 배를 저어가다’는 <승설이도>(도 5)가 있있다. <섬계이도>에는 “섬계로 배 저어 가니 흥이 올라서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온다. 반드시 대안도를 만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剡溪理棹 乘興去興盡歸 不必見戴安道)”라는 왕휘지의 구절을 써 넣었다. 두 그림은 화면 구성과 산이나 나무, 배의 묘법이 동일하여 소석초부小石樵夫 폐완廢腕이라 밝힌 같은 작가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겨울그림을 대표하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유행가가 있듯이, 눈 내린 겨울밤이면 떠오르는 고사가 바로 왕휘지의 대규를 찾아간 이야기였고, ‘겨울 그림’을 대표하는 것이 ‘설야방대도’였다. 눈 내린 겨울밤의 흥취를 아취 있게 즐기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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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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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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