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소장 <십장생도> 10첩 병풍
– 늙지 않고 오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그림

십장생도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세화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식화로 선호된 주제였다.
십장생도는 임금이나 왕세자의 국혼, 대왕대비나 왕비의 회갑연 등 궁중의 주요한 행사에 장엄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의궤의 기록과 궁중행사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개인 소장 십장생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십장생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 글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화면의 구성과 소재

이 글에서 소개하는 개인 소장 <십장생도>(도1)는 10첩의 연폭連幅으로 구성된 병풍화이다. 각 폭의 크기는 세로 96㎝, 가로는 40㎝인데, 좌우 가장자리 폭의 가로 크기는 35㎝로 약간 작다. 조선시대 문헌에 따르면 병풍은 그 크기에 따라 대병大屛, 중병中屛, 소병小屛, 단병短屛으로 불렸다. 보통 높이가 3~4척尺이면 소병(약 90~123㎝), 5척이면 중병(약 151㎝), 6척 이상이면 대병(약 181㎝)으로 불렸다. 단병은 소병보다 더 작은 병풍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작품은 세로 크기가 96㎝이므로 소병풍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비단 바탕에 청록산수로 그려진 장생의 소재들은 해, 구름, 산, 물, 돌, 소나무, 대나무, 반도蟠桃, 영지, 거북, 학, 사슴 등이다. 이들 12가지의 자연물과 동·식물은 항상성恒常性·불변성不變性을 띠거나 예로부터 장수한다고 믿어져온 사물들이다.
화면에 그려진 장수 상징 동물들의 수는 거북 4, 사슴 10, 학 10마리이다. 학 중에는 백학 3, 황학 3, 청학 4마
리가 그려져 있다. 거북 네 마리는 모두 화면 좌측의 물에 위치하며 그 중 두 마리는 입에서 신령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사슴은 뿔이 있는 수컷 네 마리와 암컷 네 마리, 그리고 어린 사슴 두 마리 등 모두 10마리인데, 선경仙境을 노닐거나 물을 마시거나 혹은 불로초不老草인 붉은색 영지를 입에 대려 한다. 열 마리의 학 중에서 화면 왼편의 두 마리만 상공을 날고 있고, 나머지 여덟 마리는 모두 소나무 가지 위나 바위에 앉아 있다.
소나무는 네 그루, 반도는 한 그루가 그려지고, 대나무와 영지는 화면 여기저기에 묘사되어 있다. 빨간 색의 해가 붉게 물든 하늘 위에 떠 있고 화면의 오른쪽에는 오색의 구름이 가득하다. 이 또한 서상瑞祥의 표현으로 보인다. 근경의 돌과 언덕은 청색과 녹색의 채색 위에 태점을 찍어 묘사했다. 원경의 산은 준법을 가하지 않은 채 어두운 청색과 흰색의 바림으로 형태를 그려 산의 존재를 묘사했다. 화면 사이를 흐르면서 생동감을 만들어내는 물은 화면의 가운데와 오른쪽에서 작은 폭포를 이루고, 화면의 중앙 아래 부분을 가로질러 왼편으로 흘러내린다.
화면의 구성은 원경과 근경의 사물들이 층을 이루면서 서양화의 원근법적 구성이 적용된 듯하다.

도2 필자미상, <십장생도> 8첩 병풍, 조선후기, 비단에 채색, 각 133.3×53.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수 5827)

십장생도의 표상 공간

십장생도는 인간 세속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장생불사의 장소로서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배경으로 신선세계의 이상향을 나타낸 것이다. 화면에는 험준하면서도 환상적인 산자락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아래쪽으로는 소나무, 대나무, 복숭아가 줄지어 펼쳐지며 그 사이로는 냇물과 사슴, 거북, 영지가 곳곳에 배치된다. 화면 위로는 해와 구름이 떠 있고 학이 무리지어 날고 있다. 그야말로 불로장생의 공간이자 신선세계의 풍경 같다.
십장생도가 표상하는 ‘낙원樂園’ 곧 ‘선계仙界’의 이미지는 구체적으로 삼신산三神山과 관련이 있다. 삼신산은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라고 부르는 도교의
낙원이다.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따르면 “이 삼신산이라는 곳은 전하는 말에 의하면 발해渤海 한 가운데에 있는데, 속세에서 그리 멀지는 않다. … 여러 신선들과 불사약이 모두 거기에 있고, 모든 사물과 짐승들이 다 희며, 황금과 은으로 궁궐을 지었다고 한다. 이르기 전에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과 같은데, 막상 도착해보면 삼신산은 도리어 물 아래에 있다. [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 諸僊人及不死藥皆在焉, 其物禽獸皆白, 而黃金銀爲宮闕. 未至, 望至如雲, 及到三神山反居水下…]”고 전한다.
비교적 그 제작 시기를 올려 잡을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도2)를 보면, 원래는 10첩의 병풍화로 2첩이 결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화면 좌반부의 물결이 하늘에 닿을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 공간이자, 물보다도 아래에 있다’는 삼신산의 신화적 설정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는 출렁이는 물결의 표현이 강조되었고, 학의 종류가 백학으로만 이루어진 점, 백록의 존재 등 문헌의 기록과 같이 삼신산의 원형적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위부터)
도3 필자미상, <십장생도> 10첩 병풍, 조선후기, 비단에 채색, 210.0×552.3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도4 필자미상, <십장생도> 10첩 병풍, 조선말기, 비단에 채색, 152.5×343.0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런데 국립고궁박물관이나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소장되어 있는 <십장생도>를 보면(도3, 도4), 앞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십장생도>에서 화면의 좌반부를 크게 차지했던 수파묘水波描가 사라지거나 수면의 면적이 현저히 줄어든다. 바다의 출렁이는 물결 대신 계류와 내가 나타나는 것은 ‘해도海島’로 묘사되었던 삼신산의 개념이 점차 ‘심산유곡’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리고 물줄기의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멀리 원경의 산까지 이어질 듯 원근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공간감의 표현은 조선후기에 유입된 서양화풍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십장생도의 제작 배경

십장생도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세화십장생歲畵十長生>이다. 이색은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 등 10가지 십장생의 구성물 각각에 대해 노래했다. 다음으로 오래된 기록인 조선전기 성현(成俔, 1439-1504)의 <수사세화십장생受賜歲畵十長生>에서 성현은 1502년 임금의 하사품으로 받은 해, 달, 산, 내, 대나무, 소나무, 거북, 학, 사슴, 영지 등을 노래했다. 십장생도는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시대에도 계속 세화로 그려졌을 뿐만 아니라 궁중의 장식화로 선호된 주제였다.
왕실의 무병장수無病長壽와 만수무강萬壽無疆을 기원하기에 십장생도는 매우 적절한 상징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십장생도는 임금이나 왕세자의 국혼國婚, 대왕대비나 왕비의 회갑연回甲宴 등 궁중의 주요한 행사에 장엄과 치장을 위해 사용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의궤儀軌의 기록과 궁중행사도宮中行事圖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진채로 그려진 십장생도는 비록 이를 그린 화가의 이름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조선시대 도화서의 수준 높은 화원이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조선시대 궁중에서 선호되었던 십장생도가 민간에 확산되었음을 알게 해 주는 기록이 있다. 1844년(헌종 10) 한산거사漢山居士가 지은 풍물가사인《한양가漢陽歌》에는 당시 민간의 미술품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듯 상품으로 유통된 그림의 명칭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백자도·요지연과 함께 장수와 다복을 상징하는 곽분양행락도·해학반도·십장생도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궁중회화의 대중적 확산이 유통을 통해 저변화되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다.

도5 필자미상, <십장생도> 10첩 병풍, 1880년, 비단에 채색, 각 201.9×52.1cm, 미국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개인 소장 <십장생도>의 제작 시기

현재 미국 오리건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십장생도>(도5)는 1924년 서울에 있던 테일러무역상회를 통해 해외로 판매·수출된 경우이다. 이 병풍은 특이하게도 총 10첩 중에서 마지막 두 첩에 14명의 좌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1879년(고종 16), 여섯 살의 왕세자(나중에 순종이 됨)가 천연두에 걸렸을 때 치료를 맡았던 의약청의 관리임을 《승정원일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도1 부분 도5 부분
학, 소나무,
구름의
표현 비교
해가 나오는
부분 비교
묵점을 찍은
부분 비교



왕세자의 병이 완치되자 이를 축하하고 동시에 왕세자의 장수를 기원하여 그린 기념화였던 것이다.
개인 소장 <십장생도>(도1)은 화면 구도와 세부적인 필법 등에서 오리건대학교 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도5)와 강한 친연성을 보인다. 우선 두 작품의 구도상 화면 중앙부분을 가로지르는 냇물의 위치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냇물이 화면 중앙부분을 가로지르도록 구성한 사례는 그렇게 많지 않다. 두 번째로는 학의 날개 색이 백·황·청 삼색으로 구성된 점과 학의 동세에서 같은 본을 사용한 듯 흡사하다는 점 또한 공통점이다. 세 번째로는 세부적인 표현에서의 공통점이다. 구름의 표현 방식, 해의 주위를 얇게 두르고 있는 선 등에서 비슷한 필법이 간취된다. 또한 소나무의 이파리를 먹선으로 그려낸 필치와 화면 곳곳에 묵점을 찍어 식물의 존재를 표현한 점 등에서 유사한 필법이 느껴진다.
따라서 이 개인 소장 <십장생도>는 1880년에 제작된 오리건대학교 박물관 소장 <십장생도>가 그려진 시기나 그것을 그린 작가와의 연관성 위에서 그 제작 시기나 작가를 염두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문헌
박본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십장생도>>, 《미술사논단》 제15호, 한국미술연구소, 2002.
박본수, <조선후기 십장생도 연구-궁중 ‘십장생병풍’을 중심으로>,
《병풍에 그린 송학이 날아올 때까지-십장생전》, 궁중유물전시관, 2004.
박본수,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병풍 연구>, 《고궁문화》 제2호, 국립고궁박물관, 2009.
박철상, <병풍 속의 서예>, 《병풍 속 글씨와 그림의 멋》, 수원박물관, 2011.

박본수 |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

호암미술관 및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원, 경기도박물관 학예팀장,
경기도미술관 책임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민화학회
연구이사, 동양미술사학회 편집위원, 경기도박물관 학예실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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