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진 작가의 봉황 이야기 – 화폭에 희망으로 내려앉은 봉황

성군聖君이 출현하거나 세상이 태평성대일 때 나타난다는 봉황. 실제로 볼 수 없는 상상 속 동물이지만, 강효진 작가에게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굳은 의지이자 선조들이 간직해온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깊고 화려한 색감으로 봉황을 소환하는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편집자주)


내 삶의 중심축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에 있다.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던 젊을 때나, 연륜이 생긴 지금이나 변함없이. 현실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행복? 성공? 건강? 그것들도 결국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은 국가의 안녕과 뗄 수 없었다. 우리는 굴곡진 시대를 겪으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오랫동안 평화를 염원해왔다. 민화를 그리는 이유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희망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소재는 봉황이었다. 그림 속 희망은 오색찬란한 빛으로 빛났고, 강하게 힘차게 날갯짓했다.
조선 왕조는 봉황(수컷을 봉鳳, 암컷을 황凰이라고 함)을 왕의 상징으로 삼고, 당대에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창덕궁 부벽화付壁畵의 군봉도에서 처음 마주한 봉황은 고고한 자태를 한껏 뽐냈고, 그 화려함에 사로잡혀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금분과 금니로 장식미를 더했다.

일종의 습작인 <봉황1, 2>(도2)를 완성하고 <조선왕조 봉황과 옥새>(도1)로 2011년 조선민화박물관 전국민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대상 수상작의 배경에는 왕의 곤룡포를 장식한 운문雲紋을 균일하게 넣고, 그 위에 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옥새 인印을 6과 배치하고 마주 보는 구도의 봉황을 그려 넣었다. 현왕現王의 덕치德治가 실현된다는 상징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오방색과 현대적인 감성이 절충되길 바라며 바탕 색감을 어둡게 표현했다. 두 작품 모두 2014년 서울에서 열린 첫 개인전 <봉황날다>에서 선보였는데, 이후로 나에게는 ‘봉황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틀을 벗어나 생생한 염원을 그리다

첫 개인전을 연 이듬해, 인천에서 <봉황, 그리고 어울림> 전시를 열었다. 전시를 위해 제작한 <어울림>(도3)에는 새 중의 왕인 봉황과 꽃 중의 왕인 모란이 함께한 원형 안에 ‘왕王’자를 넣어 덕이 있는 군주를 만나 풍요로운 삶을 기대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러나 창작을 하는 동안 ‘봉황=왕’이라는 공식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2016년 늦가을부터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와 함께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일어났다. 어지러운 시대에 봉황은 어울리지 않았다. 시계의 초침 소리도 멎은 것 같은 날, 잠들어있던 용기가 심연에서 나를 밀어 올렸다. 외면하던 세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검게 타 버린 모란 속에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봉황이 되고 싶어 하는 닭. 그렇게 <닭의 노래>(도4)를 완성했다. 그러나 모란을 검게 바림하면서도 붉은빛을 남겨 놓았다.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싶어서였다. 남은 인생도 민화의 조형성을 차용해 현실을 읽어내고 희망을 그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글, 그림 강효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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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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