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희 작가의 도예와 접목한 창작민화 – 소박하게 빚는 소소한 일상

경주에서 활동하는 지안 강명희 작가는 일상적인 순간에 담긴 삶의 의미를 도예를 접목한 자신만의 민화로 풀어내는 작가이다. 그녀는 최근 전통적인 기명절지도를 모티프로 회화에 도자기를 빚어 붙인 콜라주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매일 흙을 매만지며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온기를 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대산도예’는 호국護國의 진산鎭山으로 신성하게 여긴 경주 토함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민속공예촌 안에 있다. 4대째 이어온 도예공방이자 나의 놀이터이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나는 경주 지역에서 민화 교육에 앞장선 윤자희 선생님에게 민화를 배우고, 2008년부터 공방에서 민화를 가르쳐왔다. 그렇게 15년쯤 지나고 나니 먼 곳에서도 도자기와 민화 체험을 하려는 사람들이 꽤 찾아오는 편이다. 가끔 눈을 감고 흙과 붓으로 이어진 낯선 인연을 헤아려보지만 모든 얼굴을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제 몫을 살아내기 위해 고민한 세월이 예술로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것만은 분명했다. 흙의 질감과 불의 냄새, 바람의 속도를 따라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그리고 자연에 순응한 삶이 화폭에 녹아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재주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을 찾아낸다.

나의 아름다운 보금자리, 경주

신라 천 년의 고도古都 경주는 유구한 문화유산이 남아있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 같다고들 한다. 나는 2008년부터 첨성대, 석가탑, 비천상, 천마도 등 경주를 상징하는 문화재를 소재로 작품을 제작해오고 있다. 제6회 대갈문화축제 현대민화공모전에서 특선을 받은 <첨성대 책가도>(도1)는 첨성대 위 밤하늘에는 별자리를 새기고, 첨성대 벽돌 하나하나를 책갑으로 묶인 서책으로 표현했다. 책거리의 역원근법을 첨성대 안에 끌어들여 공간적 깊이를 만들어냈다. 첨성대 주위에는 모란이 감싸고 있는데, 모란의 무리가 타렴질처럼 느껴져 첨성대와 함께 솟구칠 것만 같다.

도자기와 한지에 모란을 그리며

모란은 내가 제작하는 민화와 도자기에 자주 등장하는 꽃이다. 모란이 그려진 청화백자나 청자, 분청사기를 보면 제각기 다른 매력에 빠져들곤 한다. 흙을 만져 여러 가지 형태를 빚어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화 작품에 응용하고 싶어졌고, 어느새 도자기와 민화의 콜라주는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됐다.(도2, 3) 채색을 마무리한 화면에 재벌구이한 도자기 화병을 붙임으로써 입체적으로 탈바꿈하는 그림이라니. 석채를 올린 모란이 흙으로 구워낸 모란을 기다릴 수도 있다는 터무니없는 상상도 해본다.
내가 그리는 모란은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꽃송이 표현과 다르다. 꽃술이 없다가 있기도 하고, 꽃잎의 형태가 통통해지거나 홀쭉해지기도 하며, 바림 위에 꽃주름이 도드라지기도 한다. 언제부터 모란을 좋아하게 된 걸까. 그러고 보니 유년시절 고향 집 마당 한쪽에 핀 꽃이 아름다워서 화병에 꽂아 방에 두었는데, 그 꽃이 모란이었다. 민화의 길상적인 의미를 모르더라도 모란은 내게 추억이고, 계절이고, 겹겹이 피어난 환상이다.(도4) 그림을 보는 사람도 그런 의미를 느끼길 바라며 가상의 작은 콩새를 만들어 모란과 함께 표현했다.

새로운 기법으로 설렘을 잇다

우리 집 마당에 사는 ‘호두’는 까치에게도 밥그릇을 양보하는 겁 많은 개이다. <어설픈 만남>(도5)은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가 살포시 다리에 앉자 어찌할 줄 모르는 호두의 모습이 귀여워 그림으로 간직한 것이다. 배경에 나무 봉으로 찍어서 표현한 무늬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 한동안 즐겨 썼다. 요즘에는 도자기에 옻칠을 하는 도태칠기를 응용해보고 있다. 새로운 기법을 작품에 시도할 때마다 처음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설렌다. 주변에서 접하는 사물이나 좋아하는 것을 그려 내가 느낀 따뜻한 감동을 사람들과 소소하게 나눌 때도 그렇다. 나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 미소를 지어준다면, 이 설렘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


글, 그림 강명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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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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