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모여재도 네 번째 이야기

도1-1. 지본채색, 80x122㎝,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도1-1. 지본채색, 80×122㎝,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감모여재도

사당도祠堂圖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지방紙榜을 붙이는 빈자리다. 원래 장손이 사당에 나무로 만든 위패를 모시는 것이 도리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위패 대신 지방紙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한편 신주는 양반계층에서만이 중요시되었을 뿐, 일반 평민층에서는 지방으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민화양식으로 사당도가 많이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다룬 사당도 혹은 감모여재도는 그러니까 주로 평민층에서 제사 때 사용하던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지방紙榜, 즉 종이로 만든 것은 신주神主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와 개념은 같으나, 신주를 모시고 있지 않는 집안에서 차례나 제사 때 ‘종이에 써서 모신 신위’를 사당도의 빈자리에 붙였다가 제사가 끝나면 축문과 함께 태워버린다.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감모여재도를 살펴보자.(도1-1) 사찰에서 중요한 경배대상이 여래나 보살이듯이, 제사 지내지 않을 때는 빈자리만 남아 있어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만, 사당도의 빈자리에는 조상신의 보이지 않은 영혼이 계시는 자리로 생각해야 한다. 조상신은 유교사회에서는 절대적 존재로 경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감모여재도에서는 지방이 연꽃에서 화생한다. 즉 부처님이 연꽃에서 화생하여 나타나듯이 조상신이 탁자 위의 연꽃에서 화생하여 현신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지 이름뿐 아니라 생전에 닦은 공덕을 기리는 뜻도 있어서 비석碑石의 개념을 띠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불상의 광배에서 불상으로부터 발산하는 강력한 영기가 있듯이, 비석에서 역시 강력한 영기가 발산하여 비석 갓머리인 이수螭首에 표현되듯이, 조상신인 지방으로부터 발산하는 영기문이 주변에 표현된다.(도1-2) 지방 주변의 영기문을 채색분석해보면, 생명의 작은 싹부터 점점 복잡하게 전개하여 가운데 ‘씨방=보주’가 있고 여러 개의 영기잎이 감싼 매우 중요한 조형으로 정착해가는 과정을 분명히 볼 수 있다.(도1-2-1) 수많은 영기문을 분석해 왔으나 이렇게 가장 간단한 영기문에서 출발하여 복잡한 영기문으로 만개하는 과정을 모두 보여주는 것은 처음 본다. 이런 점 때문에 민화의 세계가 불가사의한 것이다. 무엇인지 몰라서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지 알고 나서 더욱 불가사의하므로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조형은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이어온 가장 중요한 것이나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는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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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고 자유로운 감모여재도의 영기문 표현

그 다음 지붕을 보자.(도1-3) 지붕 전체의 윤곽은 영기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까래들은 보주를 나타내고 있다. 채색분석을 해보면 더욱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도1-3-1) 용마루와 추녀마루는 영기문이되 짧은 곡선을 그려 넣었는데 그것은 용의 비늘모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건축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공포 양쪽으로 발산하는 제3영기싹 영기문이다. 역계단식逆階段式으로 단순화시킨 공포에는 지방에서 발산하는 연꽃모양 영기문과 똑같은 모양이 있는데, 바로 이 공포에서 다시 양쪽으로 발산하는 제3영기싹 영기문이 발산한다는 것은, 화가가 공포의 본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증좌다. 제3영기싹은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온 것처럼 역시 가장 강력한 영기문 가운데 하나로 건축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은 우주의 축소인 사당에서 발산하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당 안에 모셔진 조상신으로부터 발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건축 양쪽에 거대한 만병이 있다. 향하여 오른 쪽에는 연꽃 모양이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처음의 봉오리와 맨 위의 봉오리가 마치 복숭아처럼 생겼다는 것이다.(도1-4-1) 그림을 건성 보지 마시고 자세히 관찰하기 바란다. 바로 이것이 연꽃모양이 연꽃이 아니고 보주꽃이며, 복숭아 모양이 복숭아가 아니고 보주 덩어리라는 증좌인데 이것 역시 설명하자면 간단하지 않아 앞으로 진지하게 논의할 기회가 오리라 생각한다. 즉 복숭아 모양은 또 다른 보주의 형태다. 이미 만병을 여러 회 걸쳐 다루었듯이 만병 안에는 영화된 물이 가득 차 있으며 만병에서 나오는 꽃이나 나무는 모두 우주목이며 보주목이어서 무량한 보주를 뿜어낸다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다. 사당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만병은 그림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크다. 향하여 왼쪽의 보주꽃도 모란이 아니라는 것을 누누이 설명하여 왔다.(도 1-4-2) 그러므로 곳곳에 제3영기싹 갈래에서 보주들이 생겨나지 않는가. 이 역시 지난달 연재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차례 상을 보자.(도 1-5) 석류가 눈에 띤다. 차례상에는 원래 석류를 놓지 않는다. 석류모양이지만 씨방이고 씨방 안에는 무수한 씨방이 들어있고 씨앗들은 보주가 된다. 떡 같은 것이 있고, 술병과 술잔과 향로와 향합이 있다. 민화라는 사당도에는 만병과 지붕의 공포에서 발산하는 영기문 등 다른 그림에서 억제되었던 영기문 표현이 과감히 자유롭게 되어 있어서 뜻밖의 감격을 누릴 수 있다.

우주목이자 보주목인 매화 고목과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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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하와이 호놀룰루박물관 소장 감모여재도를 살펴보자.(도 2-1) 드물게 비단에 그렸다. 맨 위에 다섯 개의 큰 원 각각에는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란 글자가 없다. 필자가 보기에는 안 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보주를 나타내려한 것 같다. 그 바탕에는 사격자 무늬에 각각 그 안에 영기꽃과 보주들이 표현되어 있고, 사당도 바깥 테두리의 군청색 띠에는 구름모양 영기문과 보주들이 그려져 있는데, 사당도 안의 바탕무늬와 비슷하다. 모든 사당도가 그러하지만, 큰 소나무가 드높은 중층重層 사당건축과 멋지게 어울려 있다. 먼저 바탕무늬를 살펴보자. 부분을 취하여 채색분석해 보면 파악하기 쉽다. 이런 무늬는 복식에도 많고 능화판에도 많은 것으로 학계에서는 아직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사당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사당도 전체 바탕에 영기문을 가득 표현하였는데 왜 그랬을까? 어떤 경우에는 밑의 부분에만 장식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느 경우에고 사당도 전체의 영기화생을 상징한다. 이 사당도에서는 전체가 분홍색에 가까운 색으로 영기문을 표현하여 사당도 전체가 화생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무릇 그림에는 의미 없는 조형은 하나도 없다. 더구나 장식에 지나지 않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조형도 하나도 없다. 곳곳에 큰 보주가 있고 둘레에 붕긋붕긋한 모양이 둘려져 있는데 보주에서강력한 영기문이 직선으로 발산하고 있다.(도2-2) 무량보주의 또 다른 조형이다. 큰 무량보주는 서로 영기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이사이에 작은 보주들이 가득 차 있다. 곳곳에 보주에서 화생하는 파초모양 영기문이 있다. 파초란 특히 도자기에 많은데 역시 현실에서 보는 파초가 아니다. 팔보문 가운데 파초가 들어 있는 까닭이다. 바로 채색분석한 바탕에서 사당도가 영기화생한다.
사당 양쪽에 역시 두 개의 만병이 있다.(도2-3) 그런데 여느 만병과는 달리 매화 고목과 대나무다. 왜 매화와 대나무일까? 요즘 필자는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기획한 <조선백자전>에 열 번 이상 가서 관찰하며 청화백자에 표현된 조형들, 예컨대 소나무와 매화, 그리고 대나무가 현실에서 보이는 모양과 똑같다고 하더라도 승화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 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획한 <청화백자전>에서도 이미 확인한 터였다. 대규모의 두 전시에서 필자는 참으로 도자기의 엄청난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민화가 더욱 잘 보였다! 매화는 봉오리가 동글동글하여 보주를 상징한다. 도자기의 매화를 보면 꽃도 무량보주와 같고 봉오리는 모두 동그랗다. 필자도 매화를 그려본 적이 있다. 굵은 매화 고목…이 역시 만병에서 무수한 보주를 쏟아내는 우주목이요, 보주목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필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떤 하사下士(낮은 선비)는 크게 웃을지도 모른다. 하사가 듣고 웃지 않으면 도道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만병에서 솟아날 까닭이 없다. 대나무는 그렇다면 우주목이고, 보주목인가? 답은 그렇다. 소나무 잎의 기운 찬 뻗침이 보주에서 발산하는 영기임을 이미 밝힌 바 있고 소나무가 우주목이고 보주목임을 또한 밝힌 바 있다. 마찬가지로 대나무 잎도 힘차게 뻗쳐나가므로 솔잎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그렇지 않다면 만병에서 솟아날 까닭이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만병’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숙고해야 한다.

도가사상에 바탕을 둔 감모여재도의 의미

사당도는 매우 고차원의 정신세계다. 필자가 다양한 사당도들을 이렇게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사찰 건축의 여러 문제를 풀어냈으며 만병과 우주목을 공부했으며 무엇보다 보주와 용에 대한 공부를 지속적으로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당은 유교의 정신에 따라 그리 화려하지 않고 단순소박하다. 그러나 감모여재도를 보면 건축은 사찰 건축처럼 화려하다. 사찰 건축은 불교사상과는 관련이 없고 도가사상道家思想 내지 도교道敎와 깊은 관련이 있다. 생명생성론과 우주생성론이 바로 도가사상의 산물이며 불교미술이 빌린 것뿐이다. 불교는 사상이든 예술이든 도가사상과 융합하지 못했다면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은 불교는 도가사상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사당도에서는 건축도 만병도 용도 보주도 모두가 도가사상의 산물이고, 도교는 불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하여 노장사상老莊思想을 폭넓게 받아들인다.
차례상의 탁자와 음식을 보자.(도2-4) 넓은 탁자에는 나무의 목리木理가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목리를 옛 장인들은 영기문으로 이용하였다.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 삼층장 맨 위층의 중심에 있는 8괘가 투각된 보주 양옆으로 목리를 영기문으로 삼아 양쪽으로 힘차게 발산하고 있지 않은가!(도2-5) 사당도에서는 바로 이 목리의 영기에서 차례상이 화생한다. 넓은 차례상에는 목리가 부정형의 원이 파상형으로 퍼져나가는데 넓이에 비하여 상차림은 소박하다. 보통 만병을 바닥에 두는데 상 위에 두 개 놓았고, 음식은 달랑 보주를 가득 담은 사발 두 개뿐이다.(도2-4) 아마도 후손들은 조상신이 신선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강우방(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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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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