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예창 이문성 작가를 추모하며

이문성 (1962.05.06 ~ 2022.12.09)

사진 : 이주용

 

궁중장식화의 세계화, 그 초석을 다진 선구자

1세대 민화작가인 예창 이문성 작가가 지난 12월 9일(금) 작고했다.
10대부터 46여 년간 민화 외길을 걸어온 그의 마음속엔 늘 한국 궁중장식화의 맥을 올바로 계승하리라는 숭고한 사명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궁중 미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하라”고 했던 그의 원대한 꿈과 비전, 넓고 깊은 작품세계를 찬찬히 돌아본다. 예창 이문성 작가를 추모하며.

글 김송희 기자


화가를 꿈꾸던 중학생 시절, 이문성 작가에게 별안간 특별한 이웃이 생긴다. 바로 옆집으로 이사 온 예범 박수학 작가. 운명처럼 이어진 인연으로 이문성 작가는 박수학 작가의 공방에서 일하며 민화의 길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세월이 지나 예범 박수학 작가의 귀향 전에 함께 선 두 작가


화가를 꿈꾸던 소년, 어엿한 작가가 되기까지

이문성 작가는 민화의 세계에 더욱 깊이 들어가기로 마음먹고는 박수학 작가의 소개로 찾아간 나정태 작가의 공방에서 본격적인 일과 배움을 병행해갔다. 당시는 한창 민화가 외국으로 활발히 수출되던 때, 그는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누군가는 반복적인 모사 작업을 그저 일거리로만 여겼을지 모르지만 이문성 작가는 그 안에서 배움의 의미를 찾았다. 그는 생전 월간민화와 인터뷰를 통해 “나중에는 안 보고도 그려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귀띔한 바 있다. 성실한 모사 작업으로 필력을 탄탄하게 하고 옛 그림을 분석, 연구해가며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차근차근 구축해갔다. 80년대부터는 꾸준한 작업은 물론이고 함께 활동하는 민화계 동료들과 활발한 소통을 이어갔다. 1986년 20여 명의 작가와 함께 최초의 민화작가 단체로 알려진 ‘민화연우회’를 창립, 전시에 참여하며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작가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이문성, <궁중화조도>



(좌) 이문성, <일월오봉도>, 180×110㎝ / (우) 이문성, <황금일월오봉도>, 155×55㎝×2


은은하면서도 묵직한 색감, 때론 거침없이 과감하게

이문성 작가는 10대 때 <십장생도>를 처음 보고 ‘백록색’에 매료된다. 백록색이 지닌 신묘한 매력은 이문성 작가의 마음을 끊임없이 일렁이게 만들었고 종국엔 자신만의 백록색을 창조한다. 그의 작품 <궁중화조도>, <일월오봉도> 등에서 특히 은은하고 영롱한 그만의 백록색을 오롯이 느껴볼 수 있다. 이렇듯 이문성 작가는 색감에 대해 기민한 감각을 가지고 줄곧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색감을 부여할 것인가 고민해왔다. 궁중화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이 때론 누군가에겐 거부감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것이 내내 풀리지 않는 숙제였던 것. 이에 그는 1995년경, 과감하게 색감을 톤 다운하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미감의 작품을 완성해 선보인다. 오방색을 기조로 하여 궁중화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파스텔 색감으로 독보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후 30여 년의 세월과 함께 그의 작품에는 묵직함과 깊이감이 더해졌다.


이문성, <생生>, 2022, 장지에 수간분채, 55×60㎝



이문성 작가는 전통적인 궁중장식화는 물론이고 과감한 창작민화까지 자유로이 넘나들며 작품세계를 확장해갔다. 그가 때때로 보여준 거침없이 과감한 시도들은 신선한 환기는 물론 많은 작가에게 영감의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다소 지루하리만치 엄숙하기만 했던 일월오봉도의 이미지를 깨준 <황금일월오봉도>, 생명의 근원인 물이 순환하는 모습을 담은 <생生>, 파란 모란을 한 아름 피워내 일상 속 평화를 기원한 <행복한 의자>, 질박한 필치로 화목을 이야기한 <장생화목도> 등은 오래도록 회자될 그의 창작품들이자 수작秀作이다. 1세대 민화작가 금광복 작가는 이문성 작가에 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민화 외길을 걸어와 오늘날 민화를 꽃피우게 한 진정한 1세대 민화인”이라며 “한창 작품 할 나이에 먼 길을 떠나 황망함을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이 슬프다”고 전했다. 더불어 “전승 민화를 잘하는 것은 물론 창작 작품에는 그만의 조형 언어가 존재한다. 사슴 두 마리를 강하게 표현함으로써 외롭고도 슬프면서 휴머니즘 가득한 그림에서 그의 조형 언어를 읽을 수 있다”며 그의 작품세계를 회고했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관화/민화 17-18기와 함께


예창 이문성의 삶: 민화, 후진 양성, 궁중장식화의 세계화

이문성 작가의 삶을 회고할 때 그림을 그리는 일 만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진 양성’일 테다. 이문성 작가는 2011년부터 10여 년가량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관화/민화 교육자과정 주임교수로 역량 있는 수많은 민화인을 배출했다.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관화/민화 교육자과정 총동문회(이하 경민회) 회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나가는 것은 물론, 또 다른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2018년에 창립해 이문성 작가의 가르침 아래 정기적인 회원전을 개최하며 민화계 대표적인 궁중장식화 단체로 성장한 예창궁중장식화전승회(이하 예창회) 회원들 또한 탄탄한 공력으로 국내외에 궁중장식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영향력을 선사하고 있다. 어쩌면 이문성 작가의 수많은 걸작 중 가장 빛나는 작품은 바로 제자들이 아닐까.
이문성 작가가 궁중장식화를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미국 워싱턴 D.C 연방 국회의사당 캐논홀에서 K-국제민화협회를 설립하면서부터다. 이후 워싱턴 D.C, 맨해튼, 메릴랜드 등 꾸준히 민화와 궁중화로 전시를 개최했으며 뉴욕한국일보, 미주한인재단 워싱턴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모전, 작품 퍼레이드 행사 등 획기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2020년, 한얼문예박물관이 개최한 ‘제1회 한얼의 천년혼, 명인·명장 수여식’에서 ‘궁중장식화 명장(제2020-6호)’으로, 2021년 대한민국 대한명인회가 개최한 명인추대식에서 ‘대한민국 전통민화 명인(제06-062-01호)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엘리콧시티에서 <한국궁중화의 초석전>을 성료하고, 2022년에 K-국제민화협회를 한국궁중장식화협회로 확장·개편하며 창립전을 통해 앞으로의 활발한 활동을 기약하는 등 궁중장식화의 세계화, 그 초석을 튼튼히 다졌다. 놀라운 것은 이처럼 숨 가쁘게 달려온 그가 오랜 기간 병마와 분투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세상을 뜨기 불과 한 달 전인 11월, 제자들과 즐거이 MT를 다녀온 데다 마지막 입원 직전까지도 대학원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을 진행했던 것. 장례 직후에는 일찍이 써놓은 그의 유언장이 발견됐다. 이문성 작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제자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이문성, <행복한 의자>, 2021, 165×120㎝



이문성, <장생화목도>, 1996, 한지에 분채, 60×65㎝


예창 이문성 작가를 기억하며

이경자 예창회 회원은 “낯선 해외에서 제자들의 작품을 한가득 실은 가방을 이고, 지고 앞장서 걷던 열정적인 모습이 아직 선연하다”고 회상했다. 김미옥 예창회 회장은 “미국 한인사회에 민화를 알리고자 고군분투하시던 분”이라 그를 기억했으며, 김지현 예창회 회원은 “연극 하는 사람은 끝까지 연극판에 있고자 하듯 나 또한 죽을 때까지 민화판에 있고 싶다고 하셨던 말이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며 회고했다. 장복금 예창회 회원은 “당신 것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 하셨던 마음 영원히 잊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작가로 정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박선화 예창회 회원은 “스승님의 붓질하는 모습은 마치 춤추는 모습 같았다”고 웃음 지었으며, 박순임 예창회 회원은 “스승님이 못다 이룬 꿈을 제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앞으로 쭉 이어나가고자 한다”고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한편, 12월 21일(수) 제자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진행된 그의 추모식에서 강효숙 경민회 회장은 “병마와 싸우던 중에도 끝까지 그림을 놓지 않으셨던 ê·¸ 모습을 기억하며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민화와 궁중화를 계승하는 데 정진하리라”는 제자들의 뜻을 추모사로 전했다. 이문성 작가와 해외 사업 파트너로 함께한 손인환 한국궁중장식화협회 이사장은 “몸이 심하게 아픈 시점에도 붓 들고 포수하다 저녁 늦게야 입원해 목에 구멍을 내어 겨우 숨 쉬며 ‘나는 살아 있다’ë©° 제자들과 동료를 안심시키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김유경 경민회 사무국장은 “어린 시절 십장생도를 ë³´ê³  백록색에 매료된 이야기, 이웃으로 박수학 선생님을 만나 매일 밤낮으로 신나게 그림만 그렸다는 이야기, 공방에서 일할 때 눈 감고 그린 적도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그림 이야기를 해주실 때마다 소년처럼 환하게 웃으시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며 애틋한 마음으로 그를 추모했다.
그토록 열정 넘치던 예창 이문성 작가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그의 혼이 담긴 작품,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궁중장식화의 맥을 이어갈 현대 화원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예창회 회원들
(전체 명단: 김미옥(회장), 강덕자, 권숙란, 김상윤, 김지현, 박선화, 박순임, 손인환, 신언복, 이경자, 이정옥, 임화숙, 장복금, 장혜정, 정미옥, 조은미, 최인자)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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