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필사본

우리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는데, 대부분 책을 ‘읽음’으로써 지식을 습득한다.
이번 시간에 소개하는 유물을 통해 책을 읽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글 이다정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필사본의 원본,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이번 시간에 소개할 유물은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필사본이다. 이 유물의 원본인 《개자원화전》은 무슨 책일까? 이 유물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개자원화전》이 어떤 책인지에 대해 살펴보자. 《개자원화전》은 1679년에 청나라에서 간행된 화보로 《개자원화보》라고도 한다. 1집은 중국화의 기본 기법을 설명하는 책이고, 2집은 《난죽매국보蘭竹梅菊譜》 8권, 3집은 《초충영모화훼보草蟲翎毛花卉譜》 4권이며, 1818년 출간된 4집은 인물화보이다. 각 책은 첫머리에 화론의 요지를 싣고 그 다음에 화가의 기법, 마지막에는 역대 명인들의 작품을 모사하여 게재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청말淸末의 화가 소훈巢勳이 보완하여 1898년에 전 4집의 《개자원화전》을 발간하였는데, 이때부터 소훈임본巢勳臨本 《개자원화전》이 널리 보급되었다.
《개자원화전》은 1집 발간 당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었고, 2집과 3집, 4집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이러한 인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책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인쇄본이었기 때문이다. 대량으로 인쇄해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구입하여 그림을 연습할 수 있었다.


도3 《개자원화전芥子園畵傳》 필사본 첫 장


왜 베꼈을까?

《개자원화전》 필사본의 형태를 살펴보자. 필사본은 가장 일반적인 장정 방식인 선장 형식으로 장정되어 있다. 책표지 왼쪽 상단에는 ‘芥子園畵傳(개자원화전)’이라 쓰여 있다(도1). 책표지를 넘기면 오른쪽 페이지 우측 상단에 역시나 ‘芥子園畵傳(개자원화전)’이 쓰여 있고, 왼쪽 페이지 중앙에는 ‘芥子圖/芥子圖唐東來(개자원/개자원당동래)’라 쓰여 있다(도2). 다시 한 페이지를 넘기면 본격적인 책 내용이 나타난다. 책의 모든 내용은 원본과 동일하게 쓰여 있기 때문에 세로쓰기로 쓰였다.
《개자원화전》 필사본과 원본을 비교해보면 필사본은 원본과 거의 똑같이 베꼈음을 알 수 있다(도3, 도4). 그런데 이 책을 베껴 쓴 사람은 어떤 이유로 베낀 걸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자원화전》은 인쇄본으로 많은 부수가 간행되었다. 그러므로 ‘인쇄본을 구입하는 것이 더 간편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개자원화전》이 중국 서적이라는 점이다. 중국 서적을 수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책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육로와 해로 두 가지 경로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 여정이 매우 멀고 험했기 때문에 책은 물론 물품을 들여온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수입되었던 도서들은 유학과 관련된 이론서가 대부분이었으며, 미술 관련 서적은 상대적으로 들여오는 수가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 중국 미술 서적인 《개자원화전》을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책값도 매우 비싼 편이었다.


(왼쪽) 도1 《개자원화전》 필사본 표지 / (오른쪽) 도2 《개자원화전》 필사본 내지 일부



아마 《개자원화전》을 필사한 사람은 책을 몹시 갖고 싶었지만 구입할 만큼의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인물로 추정된다. 책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책을 빌린 후 한 장 한 장 정성들여 베꼈을 것이다. 책 내용을 베껴 그리면서 그림 솜씨가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고, 어쩌면 그 내용을 전부 습득했을지도 모른다. 표지에 상당한 손때가 묻어있음에도 책이 많이 손상되지 않았던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라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과거에 사람들은 베끼는 행위를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수양修養의 한 방법으로 인식했다. 요즘 서점에 가면 베낄 수 있도록 구성된 책이 여러 권 출판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 중에도 지식을 마음에 담고,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베끼는’ 행위를 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아무리 인쇄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필사본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다정 |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

백석대학교 기독교박물관 학예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연구원, 가회민화박물관 객원연구원이다.
월간민화 창간호부터 민화 초본에 대한 칼럼을 기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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